7세기 들어 이슬람이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마침내 641년 중동에서 벗어나 아프리카 대륙까지 이슬람이 진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 이집트로 들어와 리비아 서부, 튀니지, 모로코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약 70년 안에 이것이 이루어졌습니다. 9세기 들며 아릅납(아바스) 왕조가 성립이 되며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학문, 경제활동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안정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수니파와 시아파가 서로 확장하려 분쟁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10세기 들며 이슬람 세력(시아파, 수니파)의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선교 전투 부대장인 알 압둘라 후세인이 기존에 있던 수니파 왕조인 아글라부 왕조를 멸망시킵니다. 그리고 북아프리카 핵심지역인 카이로로 옮겨갑니다. 그러면서 튀니지 지역을 베르베르족에게 부탁 하나 관리의 어려움을 겪자 서쪽에 있던 알모하드 왕족(수니파)에게 부탁을 합니다. 이집트로 간 알 압둘라 후세인은 그들의 이상한 낌세(?)를 눈치채고 아라비아의 전통 민족인 베드 민족을 동원하여 튀니지를 치러갑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방화와 약탈을 합니다. 전통적으로 종교 싸움은 정말 치열하고 잔혹하여 어마어마한 학살과 방화를 감행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베르베르 민족은 이때 소수민족이 되어 버립니다.
시간이 흘러 이슬람의 주 측이었던 알모 하드 왕족(모로코)에게 후계자가 없자 모로코에서 튀니지로 파견된 하부시드 총독은 알모하드 왕족을 꿀꺽하여 새로운 왕족을 만드는데 하프 시드 왕족입니다. 그리고 수도를 튀니지로 옮깁니다.
11세기 들어서면 중동의 새로운 지배자인 오스만 튀르크가 등장합니다. 카이르 알딘 형제(그리스 출신, 해적 출신)는 튀니지에 들어가 해적 기지를 만듭니다. 해적질로 돈을 벌어 용병을 사드린 다음에 알제리를 정복합니다. 그리고 지배자로 인정을 받고 싶어 술탄한테 많은 돈을 지불하고 베르네로 베이 왕족이 됩니다. 다른 왕족이었던 합치드 왕족은 그들은 보고 지배자로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다를 건너가 스페인군을 끌어들여 베르네로 베이 왕족과 전쟁을 벌이게 되고 패배합니다. 우리가 아는 세르반데스(돈키호테의 작가)가 이 전쟁에 참여했던 인물로서 나중에 포로가 되고 잡혀 알제리 감옥에서 5년간 있었다고 합니다.
18세기 들면서 유럽의 영향이 강해지고 이 당시 튀니지는 해적 산업이 주력산업이었습니다. 이 당시 왕이었던 후세인 베를린 왕은 약탈이 주요 수입원이었습니다. 약탈에는 인질 산업도 포함이 되는데 이때 인질만 3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18세기 초반 막 독립을 한 미국은 힘이 없었을 때 그들은 해군은 없었고 상선만 있었는데 이들이 마구마구 나포해가자 리비아 트리폴리에다가 돈을 받치며 잡아가지 말자 협의했습니다. 리비아가 돈을 더 요구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미국이 해군을 만들고 직접 쳐들어갔다고 합니다.
19세기 1830년 프랑스는 알제리에 쳐들어가 갑니다. 후에 알제리 독립을 할 때, 지배기간이 오래되자 실제로 가장 반대를 했던 사람은 알제리 내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던 프랑스 인들이라고 합니다.
1868년 튀니지 왕국은 재정적 파산하게 됩니다. 돈을 빌려줬던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는 재정관리를 위해 국제 재정 위원회를 만듭니다. 프랑스는 북아프리카 식민지에 계속적인 관심을 갖고 이에 튀니지 지배계급은 친 프랑스파, 친 영국파로 나뉘게 됩니다. 그리고 튀니지에 개혁적인 인물인 케네딘 파샤가 등장(1860년)하게 되는데 그는 관료 사관학교를 만들어 수료한 자에게만 관리에 등용할 수 있도록 하였고 세금 시스템을 만들었으며, 나라 정체성에 대한 관심을 두었습니다. 신식 군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는 국제정세에도 밝아 프랑스 요청으로 크림전쟁에 참여하는데 전멸합니다. 전멸하긴 하였으나 승전국 지위를 얻기도 했습니다. 1861년 입헌군주제를 도입하였습니다. 이처럼 계속 적인 개혁을 하였으나 1878년에 결국 반대세력 때문에 개혁세력이 힘을 잃습니다.
1878년 베를린 회의 결과로 영국은 키프로스를 갖게 되고, 프랑스는 튀니지를 갖게 됩니다. 1881년에 프랑스가 튀니지에 정식 진출합니다. 바로도 조약 체결, 마스사 협약(우리나라의 을사조약 비슷)을 하게 됩니다. 프랑스는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를 토대로 북아프리카를 자기네들 텃밭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20세기 들면서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으로 사람 부족을 겪습니다. 프랑스가 1차 세계대전에 가장 큰 피해국이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프랑스는 나폴레옹 시절에 가졌던 사고방식에 사로 잡혔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관총이 등장한 1차 세계 대전이었는데요. 그들은 여전히 최전방에 많은 군인들을 세웠고 많은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영국은 인도에, 프랑스는 알제리 튀니지에 용병을 달라고 손을 벌립니다.
튀니지의 독립운동하면 하비브 부르기바라는 대표적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1903년 생인데 무려 1987년까지 튀니지를 다스립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을 보고 영국 프랑스 연합국이 승리할 것이니 그들을 지지해야 한다며 꾸준히 지지합니다. 1945년에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가 후 프랑스 사정을 보니 인도 차이나 반도를 지키기 위해 정신이 팔린 프랑스를 보고 이때가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프랑스에게 우호적 관계를 맺을 것이나 독립을 요구합니다. 완전한 독립은 아니었고 프랑스 자치령처럼 바뀌게 됩니다. 그러다가 1956년에 다시 독립 협상을 맺게 되는데 바로도 조약과 마스 마 협약(우리나라의 을사조약 비슷)을 무효하는 의정서를 체결하면서 자연스러운 튀니지 독립을 맞이 합니다.
1957년 하브로 부르기바 대통령 취임하고 당시로는 민주주의는 아니었지만 나라를 근대화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비이슬람 세속국가로 만듭니다. 중혼을 폐지하여 일부일처제로 만들고 이혼도 보장합니다. 기존 대학을 서구식 대학으로 병합시키고 토지 개혁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짧은 시간 내에 이뤄냅니다. 그러다 1961년 라마단까지 개혁하려다가 저항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제왕적 대통령을 위해 1974년에 개헌을 하고 종신 대통령으로 등극합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반 독제를 외치기도 합니다. 내치에는 신경 쓰지 않고 외교문제에 전념합니다. 중재하려고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튀니지가 받아주자 이에 화가 난 이스라엘은 튀니지를 공격합니다. 그 뒤로 그 문제에 손을 떼고 친미노선의 길을 걷게 됩니다.
1987년 벤알리 총리는 하비브 부르기바의 건강문제에 의의를 제기하며 의사 소견서를 공개하며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며 2004년까지 이어가다가 다시 2011년까지 이어갑니다.
재스민 혁명
2011년 노점상을 단속하던 정부가 지방에서 노점상에서 과일을 팔고 있던 청년과 대립하고 그가 분신자살을 한 것이 시발점이 되어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고 강경진압으로 약 220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수도권까지 번졌는데 그 일로 벤알리 대통령은 사우디로 망명을 가게 됩니다.
집권세력의 공백으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대두되었는데 국민 4자 대화기구가 출범하여 주요 정당과 사회세력이 대화를 시작합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2014년 튀니지는 새 헌법을 개정합니다. 2016년도에 거국적 내각이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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