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세계대전! 포에니 전쟁, 카르타고 vs 로마, 튀니지
디도여왕의 전설!
튀니지의 역사는 서양과 중동의 역사를 아우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원전 1100년 원래는 베르베르인이 그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중해 동부 그리스의 티레에 살고 있던 페니키아 인이 메소포타미아의 강국이었던 아시리아가 들이닥쳐 도망을 갔는데 튀니지 해안가인 유티카에 상륙을 하였습니다. 당시 그들의 리더는 디도 여왕이었고 그녀는 상륙하며 땅을 내어달라고 부탁합니다. 당시 베르베르 인들은 디도 여왕의 아름다운 미모에 반하였고 그래서 쇠가죽을 하나 쥐어줍니다. 이 쇠가죽의 면적만큼 주겠다고 하자 여왕은 쇠가죽을 실로 만들어 땅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한니발 장군의 조국인 카르타고의 땅의 경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디도 여왕의 미모가 반해 베르베르인이 계속적 구애를 해오자 여러 가지 고민을 해오던 디도 여왕을 자살을 합니다. 그리고 기원전 814년에 남쪽으로 이동하여 신도시를 만드는데 이름을 쌤족의 언어로는 카르트 하드 샤트, 그것이 카르타고 입니다. 원래 이들은 해양 민족이었으나 그곳에 정착하여 농사도 짓습니다. 그래서 유목민족이었던 베르베르인하고 자주 충돌도 있었습니다.
기원전 6세기에 바빌로니아가 티레를 멸망시키고, 그 이후 키르타고는 지중해의 패권국가가 됩니다. 기록에 기원전 5세기에는 프랑스를 탐험한 기록도 나옵니다.
기원전 400년에 교역을 하다가 카르타고, 로마, 시칠리아와 갈등을 빚습니다. 시칠리아 섬 주도권을 놓고 100년 정도 싸움을 벌인 데다가 베르베르인과도 마찰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 기원전 300년대 때는 베르베르인을 잡고 시칠리아에서도 어느 정도 세력을 잡게 됩니다. 하나 시칠리아의 시라쿠스의 역공이 시작됩니다. 그들은 우티카를 점령합니다. 우티카는 카르타고에게는 상징적인 도시였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위기를 그들은 "신이 화를 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동안 가짜 공양을 했다. 귀족 자제를 제물로 받쳐야 한다"라 생각하며 실행해 내부 불만을 잠재웠고 베르베르인에게 돈을 주어 용병으로 만든 다음에 시라쿠스 전투를 격퇴시켰습니다.
그 당시 로마는 힘을 키워 이탈리아를 평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본토와 3km 떨어진 시칠리아섬 본토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시칠리아 섬안에 로마에서 보내진 세력이 있었는데 시라쿠스와 붙게 되자 도움을 로마 그리거 카르타고에도 요청을 하게 되고 그들은 시칠리아에서 만나게 되어 싸우게 되는데 그것이 1차 포에니 전쟁입니다. (기원전 264~241, 23년간 전쟁)
해전은 워낙 카르타고가 강해서 이길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로마는 고심 끝에 폴대(?) 같을 것을 만들어 배가 다가오면 폴대를 배에 찍어서 건너가 싸우는 방법을 택해 효과를 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나 자연재해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는데 풍량이 오면 무조건 큰 바다로 나가야 하는데 이를 잘 알았던 카르타고 인들에게는 큰 피해가 없었지만 로마는 풍량이 두려워 해안가로 나가다가 전멸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로마의 해군은 강해지면서 카르타고는 결국 패배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전쟁에서 지면 엄청난 배상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배상금을 지급하고 나자 카르타고는 용병인 베르베르인에게 지급할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카르타고와 베르베르인의 처절한 전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카르타고는 내부의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바다에 나가기도 농업을 하기에는 베르베르인하고의 갈등도 있고 해서 입니다. 그러다가 카르타고에 일부 사람들이 스페인으로 가가로 했는데 거기에는 전쟁을 이끌던 장군 하밀카 바르카가 있었고 그의 아들이 그 유명한 한니발 장군입니다. 그는 스페인으로 건너가 15년간 로마와의 전쟁을 준비하였습니다. 먼저 프랑스를 점령하고 수만 명 병사, 그리고 코끼리와 함께 알프스 산맥을 넘었습니다. 그리고 한니발 장군은 대승을 거둡니다. 그렇게 계속 패배를 당한 로마는 전쟁의 전술을 바꾸어 절대 먼저 쳐들어가지 않고 있을 만한 곳에 먼저가 자리를 잡고 있고 식량을 없애 버리는 등의 전술을 택합니다.
이탈리아 본토에서만 카르타고의 지원 없이 17년간을 전투에 몰두해 온 한니발 장군의 힘이 약해짐을 느낀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은 이때다 싶어 설욕전을 펼치는데 카르타고 본토로 들어갑니다. 카르타고는 급히 한니발 장군을 부르고 그들은 튀니스에서 160km떨어진 자마라는 평원에서 맞붙게 됩니다. 한니발은 전쟁에 패배하고 카르타고는 전멸하게 됩니다. 한니발은 그리스로 도망갑니다. 카르타고는 막대한 배상금을 치르고 스페인을 포함한 해외 영토를 박탈당합니다. 그리고 모든 교전권을 박탈당합니다. 한니발 장군을 그리스에서 찾아내고 그 소식을 들은 한니발 장군은 자결합니다. (여기까지가 2차 포에니 전쟁)
기원전 149년까지 카르타고는 재건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였고 농사를 열심히 짓고 있었습니다. 수공업또한 열심히 육성하였습니다. 농사를 위해 땅을 찾다가 남으로 진출하다 또 베르베르 인하고 다투었는데 교전권을 박탈당한 카르타고가 전쟁을 치른다며 로마에게 알렸습니다. 그래서 로마는 카르타고로 쳐들어 왔고 카르타고 인들은 성안에 들어가 3년간 농성을 벌입니다. 결국 점령당하였는데 70만 명의 학살, 모든 건축물의 파괴, 작물재배를 못하게 하려 소금을 뿌립니다. 그리고 카르타고는 멸망합니다. 로마는 카르타고를 직할령으로 두고 베르베르왕도 잡아 죽인 다음, 누마니안 땅도 차지하게 됩니다.
카르타고는 버려두기에 정말 아까운 땅이었습니다. 로마가 결국 승리자가 되었지만 로마에게도 엄청 힘든 전쟁이었습니다. 재건하기에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다가 그 유명한 카이사르가 재건을 시도 했지만 암살을 당 합니다. 시간이 지나, 기원후 2세기 들어와 카르타고의 본격적 재건이 시작되고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입니다. 그는 지금의 리비아 출신입니다. 로마는 로마 군인에게 20년 정도 복무를 하면 동판을 주고 땅을 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로마 안에 줄 땅이 없기 되자 카르타고 땅을 주게 되었는데 사실 카르타고 지역은 농사가 잘되는 땅이었습니다. 퇴역한 군인은 자기 땅이 되자 자기 힘으로 개간하고 아프리카 노예를 데려다가 농업을 발전시키며 서서히 로마의 3대 도시가 됩니다.
이 평화를 누리던 로마도 힘이 서서히 빠지기 시작합니다. 5세기, 439년 전후로 야만족이 쳐들어 오기 시직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반달족이었습니다. 쳐들어와 로마가 자랑하던 상수도를 포함 온갖 것을 파괴시켰습니다. 그러면 역병이 돌았고 도시가 망가졌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카르타고 주변의 원주민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카르타고 지도자는 반달족 출신의 부인과 상의하고 반달족을 끌어들여 반달족을 퇴치한다는 목표 아래 스페인에 가서 겐 셸리 크라고 하는 반달족 장군을 만니 8천 명을 상륙시킵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카르타고를 파괴, 살육 등 초토화를 시킵니다. 반달족에 의해 무법천지가 된 것입니다. 이 당시가 진정한 암흑 시기라고 합니다. 예전 로마가 힘이 셀 당시에는 할 수 있었던 것들이 차츰차츰 밀려 점점 더 힘이 빠지기 시작하규 콘스탄티노플 쪽으로 힘이 옮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옛날에는 서유럽은 빈국이었습니다. 터키 지역이 부곡이었습니다. 영토가 커지다 보니 동로마 서로마로 나뉘고 황제도 두 명이다가 넷으로 나누어집니다.
6세기 553년이 동로마의 전성기였습니다.
다음 시간에 튀니지 마지막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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