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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l의/↔세상밖Story

에티오피아 2nd : 신과 함께, 지구본 연구소

by 문지기Arol 2020.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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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솔리니도 울고 간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 하면 역시 커피인데요. 어원 중 하나는 에티오피아의 남쪽 카파라는 고원지대를 발견해서 그 이름을 따서 커피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는 설과 또 다른 설은 커피가 예멘 모카라는 지역으로 넘어가 아랍어의 카베 나 카와 힘을 뜻하는 단어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습니다. 님부 1500m의 고원지대는 커피 생산에 적합합니다. 전 세계 10위, 에티오피아의 수출량 60% 를 차지하며 품종 중 예가체프가 유명합니다. 커피 품종 중에 유명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아라비아, 또 다른 하나는 노브 스타입니다. (노브스 타는 병충해에 강하고 생산량이 많으나 맛이 없는 게 특징이랍니다.)

 

 

유럽은 옛날부터 물이 안좋아서 끓인 물을 마셔야 했고 끓인 물로 만든 술은 안전했기 때문에 술을 많이 마셨다고 합니다. 하나 커피가 유럽에 전해지자 비로소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며 제정신으로 일을 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에티오피아는 성경에도 나오며 악숨왕조는 B.C. 800년대부터 등장합니다. 예루살렘의 솔로몬 왕의 소문을 들은 시바 여왕은 그를 찾아가고 그의 아들을 출산하고 그 아들이 22살 때 솔로몬 왕을 보러 가서 다시 돌아온 후에 악숨 왕조를 건설하였다 합니다. 친 로마적 왕조였으며 10세기까지 존속한 왕이라 합니다. 악숨 왕조는 중개 무역을 하였으며 그리스도교를 4세기에 국교로 받아 드렸고 수도원을 유럽보다 빨리 받아들였습니다. 5세기에 예멘을 로마의 도움을 받아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7세기에 이슬람이 번성하여 무역이 끊기었고 본격적 쇠퇴의 길을 걷다가 10세기에 대기근으로 나라가 망합니다.

악숨 왕조는 문화유적으로 유명하며 특히 오벨리스크(거대한 돌로 만들어졌으며 왕이 업적이 적혀 있습니다)가 유명한데 130여 개가 모여져 있습니다. 그 지역에서 4km 떨어진 곳에서 산의 돌을 잘라 만든 것으로 제일 큰 것은 33m 무게는 553톤이라고 합니다. 제일 유명한 오벨리스크는 27m에 무게가 180톤 나가는데 무솔리니가 로마에 끌고 가서 콜로세움에 세웠다가 에티오피아로 다시 보낸 오벨리스크입니다.

 

 

 

13세기 자그왕조 때 암굴교회인 랄리벨라를 산악지대에 만들었습니다. 1978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왕이 이슬람으로부터 핍박을 받자 제2의 예루살렘을 만들어야 된다는 계시를 받고 요단강 요르단 호수 남북 각각 5개씩 언덕에 1개 포함하여 총 11개의 지하도시를 만들었으며 120년 이상 걸렸다고 합니다. 메드 하네 알렘 교회와 기르기스 교회가 유명합니다.

 

 

19세기, 1800년대 중반 식민지에 관심이 있던 유럽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테 우드 로스라는 왕이 등장하여 근대화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는 교회, 토지 몰수와 재원을 확보합니다. 그러나 1868년 영국이 식민지 건설의 야욕을 들어내자 질 것 같은 나머지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요하네스 4세 왕이 등장하여 테 우드 로스 왕의 과업을 잘 이어갑니다. 군수공장을 만 그리고 제대로 된 통일국가를 만듭니다.

 

 

반면, 이탈리아는 1882년에 에드 트리아 해안지역을 점령합니다. 1899년에 에티오피아에 메넬리크 2 세왕이 등장하고 에티오피아를 노리는 이탈리아와 조약을 체결하며 에티오피아의 인정을 원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조약 체결 내용이 에티오피아의 조약서와 이탈리아의 조약서가 달랐던 것입니다. (이탈리아에게 유리한 계약서를 만들었던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이탈리아의 도움을 받아 개혁을 진행하는데 관료제 도입과 수도 이전, 잔화, 전기를 받아 드리고,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지부티부터 수도인 아디스아바바까지 철도를 깝니다. 병원, 학교, 기관총을 도입하며 부족을 다스려 면적도 넓힙니다.

 

 

한편, 조약서의 내용으로 태클을 걸어오던 이탈리아와 전쟁을 하게 되는데 에티오피아가 이기게 됩니다. 그래서 유럽은 이탈리아도 이기고 기독교를 갖고 있던 에티오피아 안 건들게 된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솔리니는 1935년에 다시 침공을 하고 또 패배하자 1차 세계 대전 당시에 쓰던 독가스를 사용하여 27만 명을 죽이고 1941년까지 점령합니다. 1941년에 영국 침공으로 이탈리아는 쫓겨나고 1944년에 돌려줍니다.

 

하일에 셀라시에 황제

한국 전쟁 때 에티오피아 군인을 파병해준 하일에 셀라시에 황제는 1968년에 한국을 방안 한 기록이 있습니다.

 

 

1970년대 늘어서면서 에티오피아가 망가지기 시작하였는데 1974년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사회주의 정권이 세워집니다. 귀족들의 장원이 몰수되고 국유화를 시킵니다. 미국의 군사 고문을 내쫓고 소련과 우호조약을 맺습니다. 1977년에 국경문제로 소말리아를 쳐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이때 미국은 소말리아를 지원합니다. 1978년에 집단 농장을 세웁니다. 나라 예산의 60% 집단 농장에 투자하였지만 곡물생산은 겨우 4%였고 곡물마저 수입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농산물이 부족한데도 농산물 가격을 강제 하락시켰습니다.

 

거기다가 종교분쟁도 일어났습니다. 주변 국가인 소말리아와 수단과 싸우기도 했습니다. 집단 농장의 생산성 강화를 위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농기구를 내놓아야 하는 정책을 취했습니다. 닥치는 대로 하는 농사는 사막화가 되었고 그것은 가뭄으로 이어졌습니다.

 

1980년대에 에이즈가 창궐합니다. 1984년에는 대기근으로 100만 명이 죽습니다. (단적으로는 비가 안 와서 이지만 내막은 인위적 자연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뭄은 원래 북부 지역은 티크 레이, 원로 지역에서 시작하였습니다. 남부지역은 바나나(흔히 생각하는 바나나와는 다름) 농사를 하였는데 바나나 나무의 줄기를 가루로 만들어 꼬초라는 빵을 구워 먹는다고 합니다.
북부지역은 테프라는 작물 재배하였는데 생산성이 낮은 작물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있는 와중에 반군을 토벌하다가 난민이 발생하고 테프의 생산성도 낮은데 비도 안 오고 할당량을 못 채우니 농기구도 가져가 버리고 그러면서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남부의 사정이 조금 더 나아 북부 사람들을 남부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평생 북부에 살던 사람들이 남부에서의 적응은 어려웠고 100만 명 사망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가수 퀸의 프레디 머큐리는 에디오피아의 대기근을 돕기위해 라이브 에이드라는 콘서트에 참여했다.

 

 

 

1987년 반군은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트리기 시작하여 1991년에 완전히 종결되었고, 93년에는 국민 투표를 통해 에디 트리아를 독립시켰으며 1995년부터는 총선을 실시했습니다. 현제 양원제 국가이며 종족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고 수도인 알리스 아바마에서는 부패 항의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아비 아흐메드 알리(총리)

 

 

 

 2018년부터 총리를 지내고 있는 아비 아흐메드 알리는 2019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 하였습니다. 하나 요즘 부패로 인한 항의시위로 스타일을 구기고 있다고 합니다.

 

에티오피아는 1 당체제라고 보면 됩니다. 인민 민주혁명 전선인데요 574석 중 500석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위성정당쯤 된다고 합니다. 야당은 없다고 합니다.

 

이런 혼란석에서 경제 발전 중입니다. 현재 중국에서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철도를 깔아 주었는데 약 750km를 깔아주고 40억 달러를 투자하였으며 6년 만에 완공시켰습니다. 그중 30억 불은 에티오피아에 빌려준 돈이지만 못 갚겠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합니다. 중국 내에서도 이를 부적절한 투자 사례로 본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총 120억 불 원조를 하였으며 여러 가지로 도와주었고 최근에는 위성방송을 의해 위성을 중국의 도움을 받아 쏘아 올렸다고 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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