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난 시간에 아르헨티나 간략하게 살펴 보았는데요. 아르헨티나는 생각보다 크고 다 갖췄는데 결정적 한방이 없는! 세계 어떤 나라보다 백인이 많은 나라! 선진국에서 빽도를 한 몇 안된다는 나라! 였습니다.
오늘 아르헨티나는 경제 이야기 부터 갑니다. 아르헨티나를 세계 5위까지 올려놨던 몰락이 원인이 된 농업부터 살펴보겠는 습니다. 아르헨티나는 GDP 14000달라 입니다.
Q. 19세기 부터 유럽투자자들은 괴롭히는 국가중 하나가 아르헨티나 였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돈을 주는 이유는 뭘까요?
A. 리스크를 안으면 그만큼 수입이 나니까요~ 정크펀드를 매입, 헤어컷으로 수입을 낸 투자자들이 있습니다!
(* 헤어컷이란? 예를 들어 자금이 어려워진 나라에게 갚아야할 원금이 천만불이면 "퉁쳐줄께! 2백만불만 줘!")
이걸로도 수익을? 네, 그(헤어컷) 비율보다 채권가격이 더 떨어지면 수입이 납니다. 아르헨티나가 20년안에 국제시장에 복귀를 못할거 같은데 의외로 10년만에 복귀를 하면 과거 국채나 채권 상환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르헨티나는 굉장히 불안하지만 재미있는 나라입니다. 주된 산업은 농업 축산물이며, 수출의 60%가 농산물입니다.
농업을 하는 이들을 농민들이라 지칭 하지 않고 농업전문기업들이며 그 지주들은 땅만 가지고 있고 운영할 사람한테 위탁을 줍니다. 아르헨티나는 건지농법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농업을 관개를 해야 한다 하잖아요. 물을 사용하기 위해서요.
아르헨티나는 건지농법을 하기 좋은 기후입니다. 때 맞춰서 비가 내려주기 때문에 원가가 적게 듭니다. 허나, 리스크는 확실이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작황이 좋지 않다 이러면 국제시장의 밀, 옥수수 등 이런 품목의 가격이 올라갑니다.
우리는 수입할 때 관세를 내는 반면, 아르헨티나는 수출할 때 세금을 냅니다. 우리는 수출을 하면 보조금을 주는데, 아르헨티나는 반대로 수출세를 평균 25%정도 냅니다. (나라 세금이 한때는 많았을때가 평균 25% 였습니다.)
콩 30-35%, 옥수수 22%, 쌀 10%, 쇠고기 15%
자국에서 수출품목이 수출세를 내고 관세를 내도 경쟁력이 있다는 얘기지요. 더블세금인데도 불구하고 수출하는 입장에서는 이게 없으면 더 많이 수출할텐데 하여, 2015년말에 콩을 제외한 나머지 수출제는 없어졌습니다.
대신 수출 쿼터제를 만들었는데, 수출 쿼터제 란? 너무 많이 수출하면 식량부족으로 자국내 가난한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이 힘들수 있어서 2006년 부터 실시 하였습니다.
자국에서 쓸 양을 정해놓고 나머지를 수출해라 이런식 입니다. 수출하는 식량의 양이 어마어마 합니다. 콩 종류는 세계 3위, 옥수수 세계 3위, 밀 세계 4위, 대두유(콩기름) 세계 1위 입니다. 깔고 앉은건 만해도 엄청나죠? 농산물 가격이 진짜 쌉니다.
1990년대 이후로 농업을 고도화 하려 했습니다. 가령, 콩을 그냥 파는것 보다는 기름도 뽑고 부산물, 대두밥을 활용! 가공을 해서 부가가치가 높아지게금 하였습니다.
식물성 기름인 콩기름, 해바라기유, 올리브유, 이런쪽에 투자를 많이 해서 기름이 많이 나와 바이오디젤로 사용을 합니다. 먹을걸로 차에 기름을 쓴다? 우리나라에서는 용납이 안되지만 넘쳐나는 나라에선 오히려 합리적 구조라 볼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E10이라고 해서 휘발유 에다가 식물성 기름을 섞어요. 옥수수 기름을 넣는데 엔진 안 망가집니다.
미국 중서부 지역에 가면 여기 식물기름 몇% 인지 표시가 안되는 일반 휘발유도 10% 정도는 식물기름을 넣습니다.
바이오디젤 가장 많이 쓰는 나라가 브라질 입니다. 에탄올로 굴러가는 차들이 우리나라의 LPG 차처럼 많이 있습니다. 사탕수수에서 많이 뽑아요. 사탕수수 가격이 올라가면 기름값도 올라갑니다. 그래서 브라질 차는 엔진을 개조해서 써야 합니다. 그게 이 나라의 수입 장벽이 되기도 합니다. 브라질은 워낙 크다 보니 그정도는 투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현지화 된 차를 생산합니다.
1990년 이후에 콩을 위주로 농업을 하였습니다. 콩 위주의 단작 농업을 합니다. 이유는 제일 수익성이 좋고 확실한 판로가 보장 되어 있습니다. 과거에는 다른 작물도 하고, 축산도 같이 하는 복합영농형태 였으나, 단작을 하니 농장주가 그곳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단작을 하는데도 땅이 괜찮습니다. 계속 키워도 문제가 없을 만큼 입니다.
비가 많이 오면 좋을것 같지만, 약간 건조한 토양들이 농사에 좋습니다. 비가 오면 영양분이 다 씻겨 내려가기 때문 입니다. 비가 너무 안와도 안 좋지만 비가 살짝 안오는 정도는 괜찮습니다. 열대우림의 경우 비가 많이 와 영양분을 따 쓸어가고 그나마 남는 영양분은 정글들이 철저히 다가져 갑니다. 나무가 많아 영양분이 많을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소고기는 60만톤 수출하였습니다. 세계 6위 규모이며, 국민 1인당 쇠고기 소비량이 한때 100kg 이었습니다. 갓난 아기와 나이드신 분들 포함한 양이니, 성인기준으로는 200kg 정도 된다고 봅니다.
재미있는 것은 소고기 소비량이 차츰 줄고 있다는 것입니다. 1958년 기준 1인당 98kg 이었는데, 2011년엔 58kg! 소고기로 유명한 나라가 소고기 소비량과 목축업도 줄고 이유는 콩농사가 수익성이 좋아서 입니다. 최근에 축산업이 회복하는 추세이며, 생산 쇠고기 중 절반은 중국으로 가고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원자재는 다 중국으로 가고 있습니다.
많은 서부 영화 카우보이가 등장하는데요. 카우보이는 방목하는 소들을 먹이기도 하고 시장에 내다팔때 소들 스스로 시장까지 이동시키는데 아르헨티나는 그런 역할을 하는 카우보이가 있었습니다. 가우초라고 해서 스페인 사람들하고 인디오들하고 혼혈인데 어떻게 보면 몽골같다라는 개인적 느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위에서, 초원에서 하루종일 살아요. 말 위에서 생활을 하니 다리는 오자 다리가 되고, 그래서 땅에 내려오면 잘 못 뛰어다닙니다. 가우초는 19세기때는 독립전쟁 주로 기병으로 자출 되었습니다. 말 하나는 어마어마하게 잘타는 친구들! 거의 반인반마 수준이지요! ㅋㅋ
지금은 소 키우는게 산업화가 잘되어 있는데 옛날 소는 많은데 체계적 키울 방법이 없어 가우초한테 시켜, 말을 타고 다니면서 골라서 소를 잡기도 했습니다. 밭줄로 할수도 있고, 총으로 할수도 있고 거의 사냥 입니다.
그 당시에는 내가 필요한 부위만 먹고 나머지는 썩혀 버렸습니다. 예를 들어 소 안심이나 혀를 먹으면, 그 부분만 먹고 버려 도처에 일부만 뜯겨진 소들이 여기저기 죽어 있고 독수리 코요테가 나머지가 달라들어 먹었습니다.
풍요로우면 잘 안먹게 되는 것 같아요. 잘 보다 보면 순대가 우리나라 음식이라 생각하는데 유럽에 비슷한 소세지가 있고요. 프랑스에는 돼지창자에 피넣어서 먹는 음식이 있고 합니다.
소에 특화된 사람인 가우초는 무시받고 천민 같이 살았는데요. 이 사람들이 결국에 소가 산업화가 되면서 필요없는 사람이 되어 버려졌습니다. 사냥할때는 필요했지만 세월이 흘러 소를 가둬 울타리 치고 다루니 가우초가 필요 없어져 도시에 빈민 이런식으로 전략을 하여 사라진 그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와인도 좋다고 합니다. 멜럿 이런것이 유명하다 합니다. 맥도널드 햄버거 세트 주문할때 500원 더 내면 사이즈 업 해주는 것처럼~ 몇 년전에 아르헨티나에서 햄버거 세트 주문 인증샷 같은 것이 올라왔는데 돈을 좀 더 내면 더 드려요 한것이 와인 한병을 같이 주는 거였습니다. 콜라보다 저렴하니 버거와 와인을 같이 먹습니다.
여기 맥도널드 고기 패티가 5장입니다. 광고에 세보니까요. 실제로는 모르나 고기는 정말 지겨울 정도로 먹는 나라입니다. 고기맛은 우리와 조금 다르다고 합니다. 아르헨티나 소가 풀을 먹다보니 사료를 먹은 소와 고기맛이 다른거 였어요. 예전에 호주산 소고기가 본격적으로 수입되었을때 호주산 소고기를 별로 안 좋아 하였습니다. 풀냄새 나고 질기고 사료먹은 고기와 다르다는 평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별 수요가 없자 호주도 곡식을 먹이는데, 출하 3개월 전부터 정도부터 옥수수를 집중적으로 먹인다고 합니다 . 지방이 중간중간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한국사람 입맛이 세계 이것저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남미산 소고기가 들어 오면 저렴해 질텐데 검역기준을 맞추기가 쉽지 않을거예요.
아르헨티나는 1차 산업을 위주로 하는 나라인데 제조업을 키우고 싶어했지만 잘 안되었습니다. 제조업을 키우려 수입 기준을 강화하면 물가 상승으로 인한 국민들이 생활 어려워지고 , 다시 풀어지면 수입품만 들어오니 제조업이 악화되고 이런게 반복 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 자동차 같은 경우 현지 생산부품 40% 활용하면 수입관세 세금 15%이상 깍아주고, 부품이 30%면 10%로 깍아줍니다. 국산차의 기준은 자국산 부품 30%이상이면 국산차로 인정해 줍니다.
아르헨티나의 꿈은 제조업을 잘 해보는게 소원인데 100년째 잘 안되고 있는 데요. 경제이야기를 해보면 조건을 보았을때 중남미 국가들이 못살 이유가 없습니다. 시계를 돌려 1953년 브라질 아르헨티나 생각해보면 당시 GDP를 보았을 때 우리나라 21억달라, 아르헨티나 49억 달라, 칠레 29억달라, 베네주엘라 39억 달라 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1950년대 우리나라가 사실, 아주 못살지는 않았습니다. 환율의 문제도 있었는데 환율을 일부로 고평가 하였습니다. 원조를 받는 입장에서는 원화를 강세로 만들어야 원조 액수를 늘릴때 유리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승만 정부는 인위적으로 저환율 정책, 원화 강세를 유지를 했습니다. 당시 1950년대 에는 우리가 수출할게 없고 못살기는 했지만 아프리카 저 바닥에 있는 소말리아 나라 그정도는 아니었다는 얘기 입니다.
2019년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GDP가 1조 6300억 달라인 반면, 아르헨티나는 5200억 달라 입니다. 이 격차가 왜 발생했냐가 남미경제를 설명하는 우리나라가 1차산업때매 GDP로 계산 불변 가격으로 환산했을때 어떻게 보면 1950년대랑 60년대까지는 대한민국이나 남미는 큰 차이 없이 비슷했어요. 그러나 그 이후로 격차 확벌어 졌습니다.
중남미 국가들은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을 채택'을 택하였는데요. 이를 테면 선진국에서 수입하는 상품을 국내에서 대체하는 정도로 만족하겠다. 왜냐면 1차 산업을 팔아서 벌수 있는 돈은 제한되어있고 이돈을 가지고 제조업을 하면 결국 선진국 목줄에 끌려다니는 식이 될거라 생각했습니다.
선진국에서 수입하는 라디오 티비 이런건만 생산하면 되될것이라 생각했고, 그럼 손해볼것 없고 우리는 먹을게 많으니 자급 자족 경제를 추구하였습니다. 비교 열위에 있는 산업을 인위적 생산한 아르헨티나와는 반대로 대한민국은 "수출진행형산업화 전략"을 채택 하였습니다.
그 말은, 비교 우위에 있는 것을 집중적 생산하고, 비교 열위에는 것은 수입을 하는, 자유 무역의 이점을 활용하여 교역량 증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 전략이 나중에 크게 먹혔습니다.
Q. 비교우위, 절대우위, 비교열위란?
A. 만약 우리가 라디오를 만원에 만들수 있고, 미국도 만원에 만들수 있으면 똑 같은 겁니다. 만약 우리에게 A와 B 품목이 있는데 A 품목이 더 경쟁력이 있다 하면, A라는 품목을 더 많이 만들어 파는게 소득이 더 커질 껍니다. 비교우위는 A품목이 되겠지요.
절대우위는 생각해보면 상대방(다른나라)과 나(우리 나라)와의 비교에서 정해지는 것이고, 비교우위는 우리내에서 생각했을때 입니다. 상대방보다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품목을 어떻게 수출하지? 라고 생각 할수 있는데요. 절대우위가 아닌 비교우위 이기 때문에 생산하여 수출 한다면 사회 전체적, 경제적 가치도 올라갑니다.
절대우위는 글로벌 기준이고, 비교우위는 우리나라안에서 생각했을때 입니다. 물론 비교우위이지만 격차가 너무 벌어지면 국제시장에서 안 팔리겠지만 어느 정도는 먹힐수 있는 상품이다하면 진행을 했습니다.
중남미도 수출진행형 같으면 좋았을텐데 왜 안했을까? 중남미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산업화 = 제조업"
즉, 산업화란 제조업을 말하는 것입니다.
중남미국가 입장에서는 1차 산업이 비교우위 상품이지만, 1차 산업이 이미 강한데 1차 산업을 더 하게되면, 교역 조건에 따라 소득 탄력성도 낮고 이게 맞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1950년대 경제 이론 '궁핍화 성장'이란 이론이 있었습니다. 성장을 하지만 나라는 궁핍해진 다는 뜻인데요. 비교우위에 있는 1차 산업에 몰빵하면 교역조건이 나빠지다보니 남미국가들 입장에서 사회 후생은 감소한다라는 것입니다. 즉 말이 안된다 생각했습니다.
이건 말이 안된다 생각하면서 우리가 국제 시장에 많이 팔아 수입하는 것들을 줄이는게 더 맞다고 판단 하였습니다. 1950년데에는 이 이론이 전세계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리도 사실을 영향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잘하게 된게 이런 이론을 밝았던 층이 군인과, 젊은 엘리트들 이었습니다. 1940-50년에 독립한 나라 대부분은 수입 대체전략을 섰는데 이게 우리의 경우는 실패를 했습니다.
수입대채 전략이 실패를 한 이유가 1960년 -61년 넘어오며 쿠데타와 5.16이 일어난 후에, 수입대체를 강하게 밀었는데 외판자본이라 할 수 있는 이병철 회장을 비롯한 당시 재벌 총수들이 부정 축제자가 되어 빵에 가시고 막상 해보니 잘 안되었습니다.
필수 품목은 외국에서 사와야 하는데, 우리는 팔게 없었습니다. 특히, 꼭 필요한 석유는 사와야하는데 그때는 이런것들을 미군에 의존하였습니다. 박정희 시절 5.16이후 미군과 상의없이 화폐개혁을 하자 한국군에 대한 석유 공급을 확 줄여 벌였습니다. 그럼 외국에서 사와야 하는데 우리는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쿠데타를 왜했을까? 후회할때 사업가들이 해외 기업을 찾아가 우리가 하겠다며 설득하여 수출할수 있는 것들을 찾았습니다. 말로만 한게 아니라 데이터를 들이대었는데요. 1955년 이후 60년대 초반까지 면직물을 홍콩, 마카오에 수출을 꽤 많이 했습니다. 이런 자료들을 들이 댄것입니다.
남미의 경우 궁핍화 성장 이론이 딱 맞는 나라였습니다. 1차 산업에 몰빵하고 어느정도만 제조업을 하자!
남미는 1940년대 2차 세계대전때 물건 많이 팔아 돈을 많이 벌어 나름 산업 부르조아들이 성장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한테는 고립되어 있는게 유리하였습니다. 우리가 이정도 물건을 팔아서 부를 창출을 했는데 전쟁이 끝나고 나니 다시 경쟁을 하는게 싫고 부담 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장벽을 치고 우리끼리 가는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내부적으로도 그런 논리가 선진국이 제조업이 해야된다 우리나라는 아니다. 이런 논리가 먹혀 들었습니다. 실제로 텔레비전 라디오 정도만 만들고 국내 소비하면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될 것 같은데 안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라디오를 만든다 가정해 보면?!
라디오를 만들려고 해도 공장을 지어야 하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 생산장비들은 또 수입을 해와야 했던 겁니다.
처음 소비재 수입을 대체하면 된다고 했지만 그러다가 자본재(자본재가 더 비쌈)를 수입하게 되고, 또 자본재 수입하면 규모의 경제나 이런것들이 안나옵니다. 결국 아르헨티나의 라디오는 수입된 라디오보다 비싸고 품질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럼 기껏 만들어 준것을 보호해야 하니까 수입 라디오에 관세를 300-500%를 붙여야 하고, 이런 식으로 하다가 남미 여러 나라들이 경제가 망하기 시작했다는 ㅠㅠ.
남미 경제는 통화가치를 높게 하여 해외로 너무 많은 농작물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고평가 정책을 하였습니다. 즉, 자국 통화가치 높이고 환율을 낮게 유지하는 하였습니다
(그러면, 수출이 잘 안되고 수입은 잘 되겠끔 하였습니다.)
통화가치를 상당히 일부로 보호하여 경상수지를 적자 수준으로 끌고 갔습니다.
허나, 외화 위기들이 여러 차례 오면서 중남미국가들이 망한 시작이 1980년 부터 였습니다. 우리나라도 한때 외채위기가 심각 했습니다. 1980년대 초반에는 거의 모든 축구 경기를 효창 운동장에서 진행 하였는데요. 이때 너무 많은 축구경기를 진행하기도 했고, 비오면 진흙밭이 되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 멕시코 청소년 4강 진출한 다음에 대통령 결단으로 효창운동장에 인조잔디를 깔고 난 다음에 4개 나라 청소년 축구를 했습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그리고 우리나라 였습니다.
외채순위 1-4위국가가 다 모였습니다. (외채 많은 나라끼리 모여 축구를 한다는 비아냥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 이후 우리나라는 외채위기를 3저호황으로 탈출 하였으나, 중남미는 거기서 꼬꾸라 졌습니다. 외채를 빌려준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아시아 나라들은 어떻게든 끊임없이 외화를 벌려고 빚은 늘어나도 맞출라고 노력 하는게 보였습니다. 외국 투자자들은 불안하긴 하지만 돈 빌려 주고 만기 돌아오면 연장해주고, 더 빌려달라 하면 더 빌려 주고 결국에는 경상수지 흑자로 돌아서 갚아내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자급자족 수입대체전략을 펼친 모든 나라 다 망했습니다. ( 이집트,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 80년대 새로운 중남미 정부들은 반대 정책인 신자유주의를 펼치며 모두 민형화 시키며, 수입 상품 모두 들어오게 하였습니다. 그리거 80년대 중후반 되어, 외채 더 들여오게 하고 또 망하고 이런식이 여러번 반복되는 극과 극을 왔다갔다 하였습니다.
1940~50년대 시절의 에바페론 때는 노동자와 서민들을 철저하게 보호해주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임금 높이고 해고 막아주고 여러가지를 많이 주었습니다. 대신 노조나 이런곳이 국가에 순응할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아르헨티나가 1940년대는 잘사는 나라라 외채 제로, 부채 제로 였기 때문에 노동자, 농민들, 서민들한테 막 퍼주는 정책을 펼치며 노동자 농민들은 좋아 했지만 국가의 경쟁력 제조업은 어려운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페론이란 사람은 왜 나왔느지는 역사 시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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