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rol의/↔세상밖Story

아르헨티나 4 : 제국의 역습 : 포클랜드 전쟁의 서막, 지구본 연구소, 최준영 박사

by 문지기Arol 2020. 6. 14.
728x90
반응형
반응형

 

오늘은 포클랜드 전쟁을 다뤄보겠습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 그 당시에 우리나라 신문에도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한 두달간 진행 되었습니다. 중간에 몇번의 고비들이 나오기도 하고 기억이 많이 납니다.

 

 

포클랜드는 아르헨티나의 동해안 쪽 480km 위치, 남극에서는 900km 떨어진 섬입니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식당가면 자주 볼수 있는데 오징어 원산지가 포클랜드로 표시된 경우가 많아요. 오징어를 우리나라 처럼 많이 먹는 나라도 없어요. 이태리도 먹기는 하지만 우리처럼 잘 먹는 나라가 없는것 같아요.^^


포클랜드는 물고기가 많이는 지역입니다. 잡히는 물고기 팔아서 포클랜드 주민들은 행복하게 잘 삽니다. 주민들이 현재 약 2000명 정도 됩니다. 거기서 살면 밖으로 나가기 싶지 않다 생각이 드는데 공항도 있고 비행장도 있긴 합니다.

 

아르헨티나 입장에서는 480km 떨어진 곳인데 포클랜드 제도는 영국령 영국에서는 1만km 떨어진 곳 입니다. 포클랜드섬은 700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 졌으며 이루어진 섬중 큰섬인 동포클랜드, 서포클랜드 2개로 되어 있습니다. 포클랜드의 수도 역할을 하는 스탠리가 있는 곳이 동포클랜드 입니다. 18세기 까지는 펭귄동네 였습니다. 펭귄이 남극에만 사는것은 아닙니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손을 댔는데요. 처음 발견은 1600년쯤에 네덜란드가 발견하였습니다. 약 100년 후인 1690년 영국 존 스트롱 이란 사람이 이 지역까지 향해 했는데 향해를 도와준 백작 이름이 포클랜드였고 이름을 따서 포클랜드 섬이라 지었습니다. 그럼 그 이후 영국령이 되었나? 꼭 그런건 아닙니다.

 

 

1764년에는 프랑스 사람이 와서 이민자를 정착 시킵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하는데 포클랜드를 말루이스라고 불렀고, 아르헨티나에선 말비나스라는 명칭으로 불립니다. 그러다가 1765-1770년 경에 영국과 스페인이, 서쪽은 영국! 스페인은 동쪽을 나눠 갔다가 영국 파견 총독이 작전상 후퇴를 하고 다시 함대를 보내 스페인이 반대로 철수하고 이런식으로 지내다가 유럽의 나폴레옹 전쟁때는 아무도 신경 안쓰고 방치합니다.

 

 

 

이후, 1820년에 새롭게 등장한 아르헨티나가 소유권을 주장하다가 소유권이 애매해집니다. 영국은 자기땅이라 생각하지만 막 주장하지는 않는! 넓은 섬은 아니지만 남극과 가깝고 대서양과 태평양 연결하는 휴게소 같은 그런 느낌의 섬! 이 지역을 둘러싸고 1830년 쯤에 미국 형님들이 나타납니다. 미국이 이 당시에 주력 산업이 포경 산업 이었습니다. 모비딕이 괜히 나왔을까요? 일본 혼자 잡으니 뭐라 하면서도 미국이 포경선들이 등장하여 여기를 포경선 기지처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지역에 영유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서로 나타나다 보니 결국 영국이 정리를 합니다. "댓고! 우리땅이야!" 이게 19세기 말입니다. 19세기 중반쯤 되어 일단 영국땅이라고 일단 인정해 주게 됩니다. 아르헨티나는 코앞땅인데 영국한테 뺏겼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코앞에 있는데 반대편에 있는 영국이 가져간 아직까지도 제국주의의 상처가 남은 땅이라 생각합니다. 영국은 포클랜드를 경비함한척 정도 보내서 관리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1930년대쯤 되어 머릿수를 세보니 2400명 정도 거주하였는데, 영국 사람이 양털 양고기 대충 의식을 해결하며 살아 갔습니다. 그리고 20세기 들어오면서는 영국군의 석탄 보급소가 됩니다.

 

 

 

그전에는 식수나 쫌 챙겨갈까 했는데 그때부터는 전쟁시 연료로 석탄을 쓰다보니 주유소처럼 보급을 받는곳으로 쓰였습니다. 독일 해군이 나타나 석탄이 부족해서 털러오니 영국 해군이 숨어있다가 기습을 해서 격침을 시킵니다. 1차 세계 대전때이고 이것을 포클랜드 해전이라 부릅니다.

 

 

2차 세계 대전때는 아무일 없었고 1952년때는 영국이 식민지 유지 필요 없다 생각하여 포기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 한테 포클랜드를 넘기기엔 자존심이 상하고 미국에 넘길까 고민하던 와중에, 이 지역에 있던 영국 사람들이 우리는 대영제국의 신민으로 남고 싶다 주장합니다. 애매하게 있다가 아르헨티나 넘어가기 무서우니 "영국령으로 해주세요!" 하며 주민들이 원하니 그런 상태로 지냈습니다. 아르헨티나 입장에서는 "우리땅인데 ~ 무단 점유하냐!" 이러고 있다가,,,,

 

 

 

 

1970년대 후반쯤 되니 아르헨티나는 군부독재의 "더러운 전쟁"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당시 아르헨티나 통치체계는 육해공 총장 삼군 사령관 3명이 서로 협의해서 끌고 가는 체제 였는데 그중에 "아이작 아니야" 해군대장이 포클랜드를 반드시 찾아와야 한다 주장합니다.

 

 

 

 

1982년 3월에 부에노스에서 유열폭동 일어나니....
이런 폭동이러나면 지배층은 관심을 외부로 돌리지요. 1983년이 되면 포클랜드 섬, 아르헨티나에선 말리나스 제도로 불리는 이섬을 뺏어간지 150년 되는 해! 그래서 이때를 기념하여 탈환 한다면 국민들이 잠잠해질것이다 생각하여 침공 명령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처음에 아르헨티나는 가볍게 생각합니다. 어차피 영국 군인들은 거기(포클랜드섬)에 없으니 잽싸게 공격 점령하여, 깃발 꽂고 사진찍고 돌아온다가 작전이었습니다. 영국군이 반격할거라 생각 안했습니다. 영국과 포클랜드의 거리가 8000 마일이니 너무 멀기도 하고, 당시 영국은 경제난이 엄청 심각해서 서로 힘드니 안싸울거라 믿었지요.

 

1976년에, 남극 사우스 샌드위치라는 영국령 섬 이 있는데 아르헨티나 슬쩍 자기 땅이라 주장했을때 영국이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1982년 1월에 아르헨티나 쪽에서는 작전 변경하여 침공후 후퇴가 아닌, 아예 점령해버리자! 하여 9월 15일까지 작전을 준비완료 하는것으로 넉넉하게 계획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전쟁은 1982년 4월에 시작을 했는데, 4월 전쟁이 힘든 이유는 우리와 겨울이 반대인 남방구라 4월이 겨을이었습니다. 겨울철은 점령 하기도 쉽지 않고 엄청 남극이라 가까워 파도가 쎄고 하니 겨울철은 피하고

 

나중에 말씀드릴 영국군이 반격을 해오면 미사일로 공격해야 하는데 9월은 되야 비행기에다가 대안 미사일 탑제 슈페르 에땅다르라는 프랑스, 14개 엑조세 공대함 미사일 15개 세트를 갖출수 있을것 같았습니다. 날좀 풀리고 무기도 준비되고 때마침 포클랜드에 있던 경비령이 9월달에 철수한다는 기사가 나와 9월까지 차근차근 준비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9월에 전쟁을 했다면 역사는 바뀔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했습니다.

 

 

 

 

왜 안했냐면 아르헨티나가 욕심을 낸게 남극쪽에 사우스 조지아 섬이라고 포클랜드 남동쪽으로 800 마일 떨어진 섬인데, 제임스 쿡 선장이 발견한 섬입니다. 사람이 살순 없지만 포경선 섬 기지로 사용 하다 방치했는데 고철이 여기에 많았습니다. 아르헨티나 사업가가 고철을 매입하겠다고 영국에 제안을 하고 1982년 계약했는데, 정식 계약전에 상륙 허가 받지 않고 먼저 상륙을 하여 작업량 체크하였습니다. 거기에는 영국 과학기지가 있었는데 이때 영국 친구들이 보고 본국에 연락을 하였습니다. 영국에서는 계약기간 아닌데 왜오냐? 하였고, 미안하다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다가 1982년 3월에 다시 상륙을 했는네 제대로 된 인부들 챙겨가주고 왔는데 오자마자 영국땅이지만 아르헨티나 사람 왔다는 깃발을 꼽고 쎄레모니 하였습니다. 그걸 알게 된 영국에서는 해병대 22명 군대를 파견합니다. 거리가 멀어 22명만 보냈습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도 자국민 보호 명분으로 14명을 보냅니다. 그래서 눈으로 뒤덮힌 황량한 곳에서 20마일 사이에 두고 서로 째려보고 있었습니다.

 

 

 

 

 

전쟁준비 하던 아르헨티나 입장에서는 여기까지 와서 방어할 줄은 몰랐던 거죠. 그래서 작전계시를 땡겨, 4월 1일에 상륙하는 것을 목표로 3월 28까지 출동준비를 하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9월 이었는데 갑자기 5달 정도 빨라집니다. 영국이 낌새가 이상해 해서 한일이 지블로터 근처에 있는 영국 핵추진 잠수함을 포클랜드 제도까지 보냅니다. 핵 잠수함이 3월 29일날 출항하여 10일 정도만에 지구 반바퀴를 돌아서 갑니다.

 

 

보통 핵추진 잠수함을 SNS이라 합니다. 핵추진 잠수함을 보낼때, 같이 디젤 잠수함도 보냅니다. 디젤 잠수함이 한달 걸리는데 전기로 충전해 가다보니 20노트 36km정도 속도로 1시간 정도 가다보면 베터리가 나갑니다. (그래서 속도가 느립니다.)

 

 

 

핵 원자력 잠수함이 줄줄이 도착하니 아르헨티나 입장에서는 껄끄러웠습니다. 해군 작전중에 잠수함을 찾아내는게 제일 힘든일입니다. 아르헨티나는 역량이 없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찾아낼수 있는 나라가 별로 없습니다. 해군이 큰 배를 좋아하는 이유가 싸우는 것도 좋지만 과시용으로도 좋습니다. 일단 크고 대포 많이 실려 있으면 쎈 느낌이 있습니다. 잠수함은 실용성은 좋으나 남한테 보여주기는 어렵습니다. 바다에 핵 잠수함이 있다 생각하면 활동이 어렵습니다.

 

 

 

영국해군 입장에서는 우리가 이걸 방치하면 안된다 생각하여 영국 해군 참모총장이 대처수상 한테 먼저 찾아가서 이길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국방장관은 힘들겠다 생각 하던차에 해군이 먼저가서 얘기합니다. 대처는 알겠다고 말합니다. 영국 해군은 당시 세계 3위 정도 해군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핵 탄두미사일 실은 잠수함 4척, 공격형 원자력 11척 경향모 2척, 세계 3위 수준의 해군력을 갖고 있었지만 이것은 82년 기준이었고,

 

 

 

1978년 까지는 팬텀기를 운영할수 있는 5만톤급 정규항모 아크로열이나 뭐 이런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팬텀기가 원래는 미국 해군에서 개발했는데 미국 공군이 자기것 보다 좋다는 것을 알게되고 자존심 굽히고 쓰게 됩니다.

 

 

 

영국 해군은 1970년대 동남아시아, 중동을 담당하는 막강한 파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싱가포르에도 극동함대 사령부도 있었고 인도양에도 항모도 있었습니다만, 1966년 노동당 집권한다음에 전쟁놀이 그만하자 돈도 없어 하여 항모건조 취소 하였습니다. 항모 대신 미국에서 큰 폭격기 들여와 대신하자 했지만 돈 없어 그것도 못 사옵니다. 1968년에 대영제국 해군은 세계 경찰 노릇을 안한다 선언합니다.

 

 

영국이 이 당시 급하게 보내느라 함대를 체계적 구상해서 가진 못했고 갈수 있는 놈(?)들 부터 보냅니다. 그런데 보니 쓸만한 놈(?)이 없었습니다. 군함 인데 대포가 안 실려 있었습니다. 전쟁을 생각하고 만든 함대이긴 하나 이런류의 전쟁을 생각하고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영국이 생각하던 전쟁은 미국을 도와 대서양에 소련 잠수함 들어오면 격파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그런 옛날식 구닥다리 함포를 실은 배를 갖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잠수함을 잡는것이 목표지 그런 것은 필요가 없었습니다. 옛날식 함포 그런 함정이 없어 당시 허미즈 항공모함과 인빈서블이라는 경향모에 헤리어기 탑제해서 보냅니다.

 

 

해군 4000명을 보냈는데 배가 마땅치 않아 여객선과 민간배를로 보낼려고 했으나, 배를 소유하고 있는 회사는 "차라리 징발을 하세요!" 국가가 가져가는 식으로 해달라는 뜻이었습니다. 민간 배가 전쟁지역에 참여하게 되면 보험료가 약 10-20배가 오릅니다. 차라리 뺏어가서 잘 쓰고 돌려줘라라는 이런 마인드였습니다.

 

 

 

 

허미즈, 인빈써블! 우리나라 밀리터리 덕후분들은 인빈써블 항공 모함을 알거예요. 경향모입니다. 미국식 경향모는 활주로가 사선으로 되어 있습니다. 앵글드데크라고 하는데 착륙과 이륙을 동시에 하려고 만들었습니다. 활주로가 2개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영화 "탑건" 보신분들은 알겠지만 비행기 뛰운 후 연기가 일어나는데요. 이것이 스팀캐터폴드인데요. 정지 상태에 있던 비행기를 이륙 속도 만큼 밀어주는 것인데요. 그걸을 증기로 밀어줍니다. 쉽게 말해 밑에서 같이 밀어주는 겁니다. 비행기 탑승 파일럿 브레이크 잡고 엔진 풀파워로 올리고 있고 밑에서 새총 쏘듯이 도와줍니다.

 

 

원자력 추진력을 이용한 미국 항공 모함는에 이런게 4대씩 있습니다. 스팀캐터폴드를 만들수 있는 나라는 지금도 미국만 있습니다. 프랑스도 미국제를 수입해 씁니다. 영국은 항공모함을 갖을수 없었습니다. 항공 모함이 없으면 나중에 소련하고 싸울때 게임이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소련은 옛날 독일식으로 대서향 항로를 격파하려고 하는데 바다에서 싸움시 상대방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게 중요합니다. 대서양에 내가 원하는 배가 어디있는지 찾는게 지금도 어렵습니다. 레이더로 훑어보려 해도 레이더 거리가 있어 정찰기가 여러개가 떠야하니 힘듭니다.

 

 

 

 

 

소련 전략은 큰 폭격기를 계조한 투블레포 95 같은 베어 정찰기를 활용해서 바다를 훏는 것인데 영국 입장에서는 항모가 없는데 저놈(투블레포 95)이 정보를 소련에 알려주면 소련애들이 미사일을 싸서 격침 시키면 영국은 저항도 못하고 죽는다는게 결론 이었습니다. 그러면 저 정찰기가 최소한 우리배 근처에 못 오도록 제네들은 쫓아내던지 베스트는 격추 시킬수 있도록 비행기를 실어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어떻게든 조그만 배라도 비행기 몇대는 실어 놔야 소련 정찰기라도 쫒아 버릴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전통 갑판 지휘 순항함이라는 이름으로 경향모를 만드는데, 갑판이 평평하지 않다고 합니다. 스키 점프라고 부르는 이 갑판은 한 영국군 장교에 의해 고안된 것인데 그가 생각하길 좁은 갑판에서 달리기 보다는 위로 비행기를 탁 뛰우는게 더 낳다하여 스키 점프를 만들어 실험을 해보니 결과적으로 더 좋았습니다. 영국이 돈은 없어도 세계 처음 시도들을 많이 하는 나라입니다. 이렇게 하여 헤리어를 실을수 있는 인빈써블 11대를 가지고 남대서양으로 출발하게 됩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