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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l의/↔세상밖Story

우루과이1 : 강제격리 없이도 코로나 19 방역에 선방한 나라가 있다? 최준영 박사, 지구본 연구소, 신과 함께

by 문지기Arol 2020.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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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루과이 시작합니다. Let's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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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나라! 수아레스!
축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나 1970년대 생들은 잊을수 없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대회에서 구기종목 4강에 처음 진출 한것이 83년 세계 청소년 축구(19세 미만) 8강전 상대가 우루과이 였습니다. 그 당시 연장전까지 해서 2:1로 고산지대에서 뛰면서도 우리가 이겼습니다.

 

 

 

 

우루과이 하면 축구가 유명하고 또 유명한 것이 "우루과이 라운드" - 1986년 논의를 시작해서 1994년에 끝났습니다. 우루과이 라운드란? 지금은 WHO(세계무역기구)! 예전에는 GATT(가트)가 있었습니다. 처음엔 공산품 관세에만 규정을 하다가 점점 규정을 넓힙니다.

 

 

 

가트 회원국들이 회의를 할때마다 라운드로 표시, 처음 새로 논의를 시작하는 국가의 명칭을 땁니다. 86년 9월에 푼타 델 에스테 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루과이 라운드라 불립니다. 94년 마라케시 선언으로 종료가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농산물 개방 때문에 유명해 집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각국 무역 보호를 위해 관세 장벽을 높여 놓았는데 미국이 먼저 자국 시장의 장벽을 낮춘 이후 세계가 차츰 장벽을 낮혔습니다. 미국의 훌륭한 점은 무력 으로 점령한게 아니라 자국 시장을 열어 평화제제를 유지한 점 입니다. 그러자 전세계 입장에서는 굳이 장벽을 높혀 블럭을 만들기 위해 싸울 필요없이 그냥 미국에 물건을 팔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공산품으로 시작하여 농산물으로 점점 이어 졌습니다. 우리는 농산물이 중요했고, 다른 나라는 지적 재산권이 더 민감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농업에 큰 충격을 받았고 94년 부터는 더 이상 막을수 없게되자 돈으로 막습니다. 그돈은 농특세!! 농특세로 거의 모든 품목에 대해 매겼습니다. 지역의 여러 사업들이 이때 만들어 집니다.

 

 

 

 

서울에 계신 분들은 잘 못느끼는데 농촌은 이때 돈을 엄청 섰습니다. 효과는 잘 모르겠으나 우루과이 이전과 이후는 대한민국의 농업은 다른길을 가기 시작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지구본에다가 구멍을 팍! 뚫어 수직으로 지구 가운데를 지나면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사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거리가 약 19600km 정도 된다고 하니 지구 정 반대편이라 보시면 됩니다.

 

 

 

직항은 없고 경유시 유럽으로 경유하는게 편합니다. 팍팍한 공항 검색이 없어서 차라리 파리 라던지 이런쪽으로 경유하시는게 더 좋을수도 있습니다.

 

 

 

 

우루과이는 유명한게 몇가지 있습니다. 나라 크기는 7만 제곱(우리나라 10만제곱)입니다만, 남미에서 1등 하는것을 나열해보면 "민주주의", "평화", "청렴도", "전자정부" "언론자유", "중산층 비중" 이런 것을 평가해보면 그들만의 리그 이지만남미에서 1등 입니다. 최근에 1등 하는게 생겼는데, 코로나 방역 에서도 1등 입니다. 여기는 확진자가 880명 입니다. 인구가 345만명. 사망자가 25명 (6월 24일 기준)

 

 

 

 

 

이 나라는 뭐가 특별해서 ? 에콰도르는 거의 헬인데 여기는 강압적 조치도 없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부분은 코로나 바이러스 강제 격리 및 통행제한 이런 부분을 국민에게 맡겼습니다. 정부의 말을 신뢰하는 비율도 높습니다.

 

 

 

 

 

방역에 있어 가장 큰 것은 경제력 입니다. 인도가 거리두기가 안되는 이유가 하루 벌어 먹고 사는 극빈층이 많아서 입니다. 기준을 하루 5.5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느냐를 기준으로 볼때, 극빈층 비율이 멕시코 35% 브라질 21% 정도인데 우루과이는 3% 미만 입니다. 국가가 3%를 도와줄수 있으면 거리두기가 되는 것 입니다.

 

 

 

 

 

 

인구대비 넓은 면적에 거주하여 방역에 성공적일거란 예상을 할수도 있겠지만 우루과이 도시화율이 어마어마 하게 높습니다. 95% 이상입니다. 물론 우라나라의 서울 느낌은 아니지만 나름 도시에 몰려 삽니다.

 

 

 

 

 

연간 쇠고기 소비량이 124파운드 즉 56kg을 인당 먹습니다. 신생아 부터 노인까지 국민 1인당으로 다 나눠 버린거니까 정말 엄청납니다. 쇠고기 통계는 연도마다 조금씩 바뀌는데요. 1,2등은 우루과이랑 아르헨티나가 항상 엎치락 뒷치락 하며 차지 합니다. 의외의 나라가 홍콩이 들어갑니다. 홍콩이 항상 3등 아니면 4등 입니다. 2016년 기준으로 쇠고기 소비량이 홍콩3위, 미국4위, 브라질 5위 입니다. 나머지는 이해가 되나 홍콩은 잘 이해가 안됩니다.

 

 

 

우루과이는 작은 나라입니다. 남 회기선 23.5도 선상 밑으로 이제 있는 온전한 국가 4나라는 뉴질랜드, 스와질랜드, 우루과이, 레소토 입니다. 태양이 머리위로 떠서 그림자가 안 생길수 있는 최고 지점! 수직으로 뜰수 있는 자천축이 그만큼 까지 기준이 23.5도 입니다. 23.5 위면 태양이 자기 머리위에 있습니다. 남회기선 바깥쪽에 있는 몇 안되는 나라중 하나입니다.

 

 

 

 

이 나라는 아르헨티나와 유사한게 많습니다. 일단 땅이 평평합니다. 전국토의 93%가 경작지나 목축지로 쓸수 있는 정말 평평한 나라입니다.

 

 

 

 

날씨 평균이 여름 23.5도, 겨울엔 12.5도 이며, 비도 많이 옵니다. 목축이나 농사짓기 정말 좋습니다. 백인 비중이 높은 나라이며, 백인이 88%입니다. 남미에서 아르헨티나와 더불어 양대 백인 국가 입니다. 그밖의 인구구성은 메스티조가 10%, 흑인이 2% 입니다.

 

 

 

공용어는 스페인어인데 이탈리아 영향을 많은 스페인어라고 합니다. 종교는 가톨릭 47%, 개신교 11%, 정도 입니다. 국민 전체가 가톨릭은 아닙니다. 그밖에 전반적으로 아르헨티나랑 비슷 합니다. 심지어 국기도 비슷합니다. 잘생긴 훈남 5월의 태양도 똑같이 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가운데에 있고 우루과이는 왼쪽 상단에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국기랑 성조기랑 합쳐놓은 듯한 느낌입니다. 독립할때 아르헨티나 도움을 받았으니 형제국이란 느낌도 있고, 우루과이 독립시기에 독립한 국가들은 다들 미국을 모델로 했으니 미국국기의 영향도 있을수 있습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있는 나라지만 아르헨티나 쪽에 거의 모여 살고 있습니다. 브라질쪽은 우림지역 입니다. 정식 이름은 우루과이 동방 공화국입니다. 우루과이는 강이름 이고; 우루과이란 강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그 강에서 동쪽에 있는 땅을 우루과이라고 했습니다. 멋대가리 없는 이름압니다.

 

 

 

 

 

수도는 이제 몬테비데오이며, 남미 최대의 항구도시로 인구 130만! 즉, 전체 인구의 30% 여기에 몰려 살고 있습니다. 남미의 중심 도시이고, 중립 도시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미 국제기구 대부분이 여기에 있습니다. 평화롭고 기반 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서 입니다.

 

 

 

 

몬테비데오는 브에노스 아이레스와 더불어 탱고의 발상지이며, 사업 관련 말고 여행으로 국내에서 몬테비데오까지 가는 경우 브에노스 아이레스를 구경 갔다가 배를 타고 둘러보는 코스로 가거나, 아니면 우루과이 접경쪽으로 배타고 넘어간 후 버스로 9시간 달려가는 코스로 갑니다.

 

 

 

1830년 브라질 독립할 때부터 계속 몬테비데오는 수도 였습니다. 또한, 1회 최초 월드컵을 여기서 했습니다. 1회 월드컵은 브라질이 아닌 우루과이에서 했습니다. 1924년에 했습니다.

 

 

 

 

 

 

1924년이면 1차 세계대전 끝나고 였는데 왜 유럽에서 개최를 안했을까요? 원래 프랑스의 줄메르가 월드컵을 만들었는데 프랑스가 주도 하다 보니 영국 독일 이탈리아가 싫어 했습니다. 프랑스가 주도 하는게 싫었습니다. 고심끝에 축구를 잘하는 나라가 남미니 그래서 남미에서 하는 걸로 결정 하였습니다. 멀다고 하는 유럽 국가들중 안간 나라가 많아서 이때는 13개 나라 정도가 모여서 하였습니다.

 

이때 우루과이는 이미 축구 강국이었습니다. 그당시 또다른 강국인 아르헨티나와 붙어 4:2로 격파! 개최국인 우루과이가 우승합니다. 공인구 문제도 우승 원인이었는데요. 지금과는 달리, 그 당시만 해도 룰이 없어 누구는 탱탱볼을 쓰고 누구는 다른 공을 쓰고 하였습니다. 경기에 어떤공을 쓸까?를 가지고 많이 싸웠습니다. 전반전에 아르헨티나 공으로 경기하고, 후반전에 우루과이 공으로 경기 하였고 당연히 우승할줄 알았던 아르헨티나가 지자 날리가 났습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우루과이 대사관을 습격하기도 하였는데, 이 정도 난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월드컵 결승전 비극은 1950년 브라질 월드컵 때가 엄청났습니다. 1950년 마라까낭 경기장 비극인데 1950년에 브라질에서 월드컵 개최 하였고, 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경기장 마라까낭 경기장 20만명이 수용가능한 마라까낭 경기장에 결승전을 우루과이랑 붙었습니다.

 

 

이당시 다 브라질이 우승할 것으로 예상 했습니다. 어느 정도 였냐면 이 당시 월드컵 피파회장 줄메르는 포르투칼어로 축사 연습을 하였고, 브라질 중앙은행은 우승 기념주화를 미리 만들었고, 신문도 미리 발간 다 해놨고 우승기념 유니폼 등 온갖 상품을 다 찍어 놓았는데, 졌습니다.

 

 

 

지금 유튜브 찾아보면 사운드가 있습니다. 함성이 잦아들며 순간 20만명이 정적이 들릴것 입니다. 이 때, 충격으로 자살자도 많았고, 1950년 브라질 대표 사람들은 죽을때까지 용서 받지 못했습니다. 정말로 이 사람들이 구순이 되어 국민들한테 하소연을 합니다. "전범들도 용서를 받는 세상인데 나는 아직도 용서를 받지 못하고 있다." 브라질이 우승 못하는 모습을 본 어린 펠레가 다시는 이런 일을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루과이는 이때 24년 우승 50년 우승 이렇게 두번 우승을 한 나라입니다. 자기 옆나라 양국에 우승을 거둔 나라가 되었습니다. 브라질은 이런 수모가 또 있었습니다. 얼마전 브라질 월드컵때 독일한테 7:2인가? 참패를 당했습니다. 결승이었나? 잘 기억은 안납니다.

 

 

 

우루과이는 지구반대편에 있는나라인데 우리나라와 연관된것도 있고 나라는 작지만 유럽에서 1000명 이상의 축구선수가 뛰고 있는 나라입니다. 정치제도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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