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이어 볼리비아로 가겠습니다. 오늘은 볼리비아의 역사!!
언제부터 살았을까요? 유적으로 보자면 2만 년전 부터 사람들이 살았고, 사람들이 모여 부족사회를 형성했다 합니다. 발굴을 해보면 몇백구씩 집터에 모여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몽골계 사람들이 내려왔어요. 2만년전 부터 아시아 대륙을 넘어와 인디오가 되었습니다.
본격적 문명이라고 하는 것은 BC.900년 이후에 등장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는 왕이 등장한 시기처럼 뭔가 왕국이라고 할만 한 나라가 생긴것 입니다. 서기 12세기 정도에 티티카카 호수 근처에서 사람들이 아이마라라는 나라가 생겨 300년 정도 존속하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잉카제국은 잉카제국이 볼리비아를 영토로 만든것 입니다. (페루=잉카제국, 볼리비아=잉카제국이 볼리비아를 자신의 영토로 만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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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우리가 조선시대인 시절에 스페인이 들어왔습니다.
남미의 3대 문명하면, 아즈텍, 마야, 잉카, 문명인데 예네들이 수천년 문명은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헤깔려 합니다. 북쪽부터 살펴보면 아즈텍 문명은 = 멕시코 이렇게 보면 거의 맞습니다. 아즈텍 문명 시기는 A.D.1440년 부터 1520년 고작 백 몇십년 입니다. 물론 그전에도 왕국들이 있었습니다. 몇개의 왕국들이 있었고 그 왕국들을 아즈텍이 무너트리고 큰 세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스페인 애들이 들어가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아즈텍 문명에는 인신공양 문화나 피라미드 같은 문화도 있습니다.
지금의 멕시코 남쪽과 그쪽에 있던 과테말라 지역이 마야 문명입니다. 중남미에 위치 하였습니다. 마야문명은 2단계로 나눌수 있는데 BC. 500-A.D.900까지 존속하다가 한번 망하였고 다시 50년 지난 이후 A.D. 970-80년 부터 - 1500년 까지 존속하였습니다. 스페인 점령자들이 처음 들어 왔을때 부터는 이미 쇠퇴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스페인이 들어가서 총소리와 말탄 사람에 놀랐다 알고 있지만 사실 문명은 쇠퇴한 상태였고 거기에 스페인이 들어오는 바람에 무너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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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문명은 숫자 0개념 사용하고, 천문학이 발달하여 점성술을 하였고 이진법을 사용하였습니다. 문명중에서 가장 정확한 달력을 사용한 문명이 마야문명 입니다. 현대 과학으로 1년은 정확히 365.2421인며,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은 365.2425 입니다. 마야문명이 사용한것은 365.2420을 썼습니다. 현재와 거의 차이가 없어요. 그시절 그렇게 정확한 달력 만들려면 별이 한바퀴 돌아 태양이 어디서 왔는지 일없이 처다보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1년이 정확히 얼마인지 알았다는 것은 별을 보고 태양이 뜨는것을 매우 정밀하게 바라보고 매일 별을 보면서 별이 이상한 해나 달에 기록하고, 1년에 한번씩 보는걸 누군가가 보고 그렸다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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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문명은 잉카 문명입니다. 그래서 남미에서는 잉카라는 단어가 많이 쓰입니다. 페루와 안데스 산맥에 자리잡고 있는 문명이 잉카문명 인데요. A.D.1200년-1500년 까지 있었습니다. 실제로 스페인 점령자들이 들어오기 전에 먼저 천연두가 내려왔습니다. 이미 천연두로 인해서 상당히 타격을 입고 있다가 실제로 스페인군이 들어 왔는데 스페인군은 이미 항체가 생긴 상태였습니다. 천연두로 인한 피해와 잉카가 내란이 있었고 스페인의 피사로가 160명의 군인과 함께 내려와 문명 하나가 멸망이 되었습니다. 잉카문명은 도로망, 물자가 유명 하였는데요. 제일 유명한 것은 마추픽추입니다.
남미 문명 특징이 바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량 물량을 옮길수가 없었습니다. 등짐으로 가는 수준이었습니다. 바퀴가 없다는 것은 수레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페루의 쿠스코에 가보면 그 시대에 만든 벽만 보더라도 정말 그것을 어떻게 돌과 돌사이 종이도 안 들어가겠끔 어떻게 맞췄나? 이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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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쿠스코는 세상의 모든 티코가 다 모이는 곳입니다. 티코란? 대우의 경차 600cc짜리 차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차가 티코입니다. 길이 무진작 좁아서 양쪽으로 교행할수 있는 차가 없는데 티코가 제일 싸고 크기도 작아서 90년대 우리나라의 티코가 중고가 되어 마지막 종착지가 페루로, 잉카 문명과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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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3개의 문명(아즈텍, 마야, 잉카)이 비슷한가요? 아니면 차이가 있나요?
문명이 인신공양을 하느냐 안하느냐와 문자의 개념, 그리고 숫자개념에 차이가 있습니다. 잉카는 도로망 잘 만들고 돌맹이로 뇌수술한 기록이 있습니다.
남미의 문명을 보면은 재밌기도 끔찍하기도 합니다. 인신공양을 보면 정말 야만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동양의 인신공양과는 스케일이 다릅니다. 줄 세워서 살아있는 사람을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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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신공양의 이유가 그 정도의 사람들을 쳐내야 할 식량 문제나 아님 다른 어떤 문제로 인한 것일까요?
여러가지 썰이 있습니다. 종교적인 배경문제나 이 동네 사람들 먹는게 옥수수 다보니 단백질을 제공할 식량으로 인신공양을 사용했다라는 썰 입니다. 그들은 사체를 계단 밑 대굴대굴 굴린 다음 돌칼로 쳐서 나눠먹는 그런식(?)으로 먹었다고 하는데, 이런 방식에 종교적인게 포함되지 않았을까 하는것이지요. 어쨋든 그걸 본 스페인 침략자들이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것이 기록으로 남아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상황들 입니다. 이렇게 3대 문명이 쭉 존재를 하다가 결국은 스페인이 와서 다 망한거죠.
볼리비아가 역사 위로 등장한 것은 1538년! 즉, 스페인이 내려와서 점령했을때 부터 입니다. 전 시간에 말씀 드린 것처럼, 1545년 은광 발견 이후 포토시 이런 시절을 거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볼리비아는 상당히 강원랜드 같은 일확천금을 꿈꾸는 곳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원주민한테는 개미지옥이었습니다.
1870년 부터는 원주민이 독립투쟁을 벌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스페인 점령자들은 그들이 기게처럼 말 잘듣지 안는다 생각해 인디오들의 추장 영향력있던 사람들까지 다치워 버립니다. 이때부터 인디오의 영향력이라는 것을 사회적으로 소멸시키는 시기가 도래했다가 19세기 초반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시절 스페인이 프랑스 한테 끌려 다니다 보니 볼리비아는 독립을 해볼수 있겠다 생각이 들어 1806년에 독립투쟁을 했었는데요. 독립투쟁을 한 그들은 인디오가 아닌 식민지에서 태어난 백인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유 계몽주의가 뭔지도 배웠고 본국에서 왜 이래라 저래라 하는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독립투쟁 하였으나 잘 안었는데, 독립투쟁을 해서 한번에 잘 되면 좋으려만 잘 되기 힘든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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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는 역사를 정리하기가 힘든데 가장 큰 이유는 독립을 1825년에 했는데 그때부터 2000년 까지 대략적 계산을 해보면 180년 중 64명의 지도자가 바뀌었습니다. 산술 계산해보면 대통령 임기가 3년이 안됩니다. 그 사이에 임시정부가 150개 들어섭니다. 군부 지도자도 있고 그니까 독립을 했는데 중간 중간에 4-6년의 임기를 갖거나 10년한 소수의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끊임없이 태통령 뽑고 물러나고 쿠데타를 반복, 그러다가 임시 과도 내각을 갖고 다음번 선거까지 또 1년!! 이런 시기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독립이후 180년(1820년대 2000대 초반까지)을 계산한 숫자로 나타난 정변의 숫자가 세게 최다 정변 발생국이란 불명예를 갖게 되었습니다. 역사 정리가 도대체가 힘든 나라입니다. 또 쿠데타가 있어서 군사정부가 길기도 했는데 보통 다른 나라를 살펴보면 쿠데타 일어나면 형님 아우 군기가 잡혀있는데, 볼리비아는 군사정권 시기에도 쿠데타가 9개월 마다 일어났습니다. A가 일어나면 이에 반발한 아무개 중령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그런식의 상당히 복잡한 혼란의 연속이 이어집니다. 신기하게도 나라가 없어 지지 않고 쪼그라지지도 않은 나라입니다.
인디오 비중이 높고 지형이 높낮이가 심하고 하나로 대충 묶이긴 했으나 서로 인종 종족 볼리비아의 지형이 높낮이가 심해 지역 종족의 갈등이 심했고 왕권의 전통도 약했습니다. (잉카문명도 페루쪽이 강합니다. 볼리비아는 점령지 였습니다. 페루는 잉카문명의 적통 후손 이지만 페루 사람들이 볼땐 볼리비아는 마음속에서는 촌놈들 이런 마음들이 있습니다.)
독립 이후 1836년에 페루가 국가 연합을 형성하기도 하였지만 이런일에 항상 껴드는 나라, 칠레가 별로 안 좋아하여 (칠레가 가서 쥐어박는 일을 거친 끝에) 3년만에 국가연합을 해체하기도 했습니다. 칠레는 남미에서 제일 잘 살기도 하지만 제일 깍쟁이 같기도 하고 영향력 행사를 당연하게 하여 다른 나라에서는 재수없어 하는 나라가 칠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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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를 우리나라가 가장 먼저 맺은 국가가 남미의 칠레입니다. 제일 먼저 칠레와 맺은 이유는 나라가 볼륨은 있어야 하고 한편 으로는 항상 FTA는 농업 파트와 걸린게 있어야 하는데요. 칠레와 우리는 겹치는게 포도 하나뿐이며 지구 반대편이라 계절 반대라 우리 농산물과 겹치는게 없었습니다. 크게 영향이 없는 나라로 고른게 칠레입니다.
한편으로는 칠레와 우리는 교역량이 꽤 됩니다. 칠레가 구리가 어마어마 하게 많이 나서 수입합니다. 칠레 입장에서는 농산물 팝니다. 공산품을 싸게 수업할 수 있으니 이득이지요.
칠레가 남미에서 제일 잘 사는 이유는 일단은 깔고 앉은게 많아요. 안데스 산맥은 자원이 많습니다. 역설적인 부분은 독재자 피노체토가 중앙 집권 효율성을 주장하며 지역에서 할거했던 호족이라던지 자기땅 자기 왕국처럼 끌고 나갔던 사람들을 밀고 국가통합을 효율적으로 이뤄냅니다. 국가 체계 부분에서 그러다 보니 남미에 있어서 보면 젤 잘살고 다른 나라들은 밥맛없다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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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내륙 국가로 전락하게 되었을때, 꿩 대신 닭을 찾게 됩니다. 우리가 태평양 바다가 막혔어 부여 잡고 울고 있어봤자지요. 그 닭이 뭐냐면? 파라과이쪽을 통해 강을 따라 내려 가보면 결국에는 대서양으로도 갈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안데스산맥 서쪽으로는 태평양이지만 어딘가 강을 따라 가보면 돌고 돌아서 밑으로 가면 결국엔 강으로 대서양으로 갈수있는 그란차코라는 동네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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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애매한 동네 였고 식민지시절 부터 여기 관할이 누구야 이런 느낌인 곳이였습니다. 적경지 경계에 있는 지역이었는데 볼리비아가 생각해보니 파라과이 강으로 대서양 진출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럴러면 파라과이를 밀어내야 하는데 이미 그곳 그란차코는 남미에서 제일 유명한 삼국동맹전쟁 일어난 지역이라 파라과이가 독립이 힘들 정도로 괴멸을 당한 곳입니다. 어느정도 였냐면 남자가 없을 정도여서 파라과이 중혼 다혼 이런게 지금까지도 그럴수도 있지 이런 느낌을 갖게 된게 뭔가 빨리 복구 하려면 국가적으로 일부다처재를 장려했습니다.
볼리비아 입장 에서는 파라과이 정도는 쉽게 이길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파라과이도 불쌍한 내륙국가 이지요. 그래서 어떻게 할까 생각 하다가 핑계 거리로 그란차코 이 지역에 석유가 묻혀 있을지 모른다는 소문을 이용했습니다. 당시 석유 메이져 회사가 가보니 땅 생긴 모양이 석유가 나올껏 같다고 얘기 하였고 석유회사 스탠다드 오일 펌프질을 했고, 다른 석유회사는 파라과이에 가서 펌프질을 했습니다. 그란차코 지역의 실효 지배 위해 노력을 하려다 보니 군대들이 왔다갔다 하고 그 트러블로 싸움이 일어납니다.
1932년 6월에 전쟁이 일어 납니다. 마이너리그 들의 전투이며 석유 메이져들이 전쟁이었는데 규모로 보면 엄청 났습니다. 군인을 볼리비아는 25만명 동원을 하고 파라과이는 15만명 동원 합니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 볼리비아는 독일 지휘관을, 파라과이는 러시아 지휘관을 대려 오기까지 합니다. 초반에는 화력에 앞선 볼리비아가 앞서 나갔습니다. 그러나 볼리비아는 국가적인 명혼을 걸고 싸우는 의식이 약했습니다. 그에 반해 파라과이는 똘똘 뭉친 또 지면 끝장이다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결정적인건 러시아 지휘관들이 효율적으로 잘 통제하였고 전쟁터가 벌어졌던 그란체코 지역이 파라과이한테 좀더 친화적이었습니다. 결국은 파라과이 승으로 끝났습니다.
고산지대에 사는 볼리비아가 처음에는 앞섰지만 전쟁터였던 그란체코는 낮은 지역으로 낮은 지역에는 풍토병이 많은데 습하고 덥고, 쩌죽나 총맞아 죽나 이렇게 되다보니 전세 역전이 되어서 고전을 하게 됩니다. 파라과이는 안데스 산맥으로 밀어 붙일때 오르막이라 고전하였습니다. 결국엔 볼리비아나 파라과이 모두 풍토병으로 더 많이 죽었습니다. 볼리비아는 6만명 죽고 파라과이는 4만명 전사하였습니다. 당시 볼리비아 인구 300만 명중에 6만명 전사하였습니다. 전사자 대부분은 남자이며 20대가 죽었습니다. 거의 전군이 개멸한 상태라 볼수 있습니다. 옆나라 아르헨티나가 그만좀 싸우라 중재하여, 1938년 휴전하였는데 문제는 석유를 캐보니 석유가 안나왔다고 합니다. ㅠㅠ
아르헨티나와 다른나라들이 싸운 이유를 묻자
볼리비아 왈 : "대서양에 가고 싶어서요!"
대답하니!~ 줄께 하며~ 파라과이 강으로 접해줄 수 있게 일부지역을 받았는데 배를 뛰우기 쉽지 않은곳 이었던거 예요~! 대운하를 수십개를 파야되는... 양쪽다 치명타를 입었고, 주변에 강대국이 있어 그들싸움에 이득이 있었으면 개입했겠지만 그런것도 없습니다.
볼리비아 입장에서는 2번의 전쟁을 연달아 진 그런 상황입니다. 왜 졌을까? 생각해보니 "우리는 국민의식이 없었던것 같애!~ 분열되어 있었어!~ 왜 분열되었을까? 볼리비아라는 국가의식이 없어! 우리가 돈을 버는게 뭐지? 석유! 지하자원! 지하자원을 국유화 하자! (외부자원 유출을 막고자) 남미 최초로 스탠다드 오일 회사를 국유화 시킵니다. 이후 국가의식을 불어놓고자 인위적인 일들을 펼친게 1952년에 볼리비아 혁명으로 발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보통선거제도 + 농지개혁을 합니다. 그리고 10년후에 보니 이해관계가 조정이 안되, 군부 쿠데타 교착상태인 무정부상태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계속 이러한 상태가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반복되어진다고 합니다.
쿠데타를 했다 하더라도 "내 앞에서 무릎꿇어!" 이런 정도의 힘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경우 한국전쟁을 치루고 그 당시 없던 시절에도 100만 대군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여기는 그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작은 세력으로도 쿠데타를 일으켰고 그게 반복되었습니다.
2000년대로 뛰어 넘어가~!!
살기 어려워진 사회에서 원주민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져 2002년에 코카 재배 합법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납니다. 남미대륙에서 코카 재배를 못하게 하려고 미국이 권한을 행사하니 원주민 입장에서는 갑자기 재배도 못하는데 범죄자 취급을 받는건가? 이런 생각이 들었던것 입니다. 미국이 비행기로 농약뿌려 못하게 하니 원주민이 들고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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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는 버스비 연료 등 공공 요금이 오르고, 인상을 철회하라는 시위가 일어납니다. 남미 국가들의 골치 거리는 연금을 누군가가 딱 잡지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공무원의 연금을 삭감하려면 힘듭니다. 유혈시위와 경찰이 출동하는 사건, 볼리비아에서 말하는 '검은 10월 사건'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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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통령이 미국으로 망명하고, 부통령 취임하여 '에너지 국유화를 통해 재원 확보하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역마다 의견이 달랐습니다. 석유 좀 나는 동네는 싫었던 것 이지요. 그러다가 2005년에 모랄데스 대통령!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이 2005년 12월에 선거를 치뤄 2006년에 취임하였습니다. 좌파에 원주민 출신인 그는 상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정치적 안정 플러스 재정확보를 통해 취약계층을 많이 도와주기 시작하였고 학교도 지어주고 상수도 지어주고 병원 예방주사 놔주고 했는데 기득권에서는 포플리즘이라 욕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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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신헌법이 나왔습니다. 신헌법으로 대통령선거를 치뤘습니다. 선거후 모랄레스 대통령이 또한번 2010년에 취임을 하고 4-5년 과정을 거치면서 모랄데스와 원주민하고 갈등이 생겼습니다. 원주민 입장에서는 과감하게 뭔가 해주는게 없고 모랄데스 대통령 입장에서는 정치세력과 친한애들도 만들고 인마이포켓해서 해서 또 나눠주고 이래야 되었던 것이지요. 2014년에 선거를 다시 해서 또 당선!! 2005, 2009, 2014 연속 당선하였고 그 사이에 헌법 바귀어 그가 더이상 출마가 불가하자 헌법을 개정하여 출마하려고 다시 국민투표를 합니다. 이길줄 알았던 국민투표는 48대 52로 졌습니다.
그래서 2019년에 선거를 해야 하는데 대선출마가 안되는 상태인데 그 대로 물러놨어야 하는데 국민투표가 안되니 헌법재판소를 찌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헌법재판소에 "어 이거 3선되는거 아닙니까? 땅!땅!땅!" "출마 가능합니다.!!" 하여 2019년 10월에 선거를 했습니다. 그런데 1차 2차 선거인데 1차에서 과반을 못하면 득표 많은 순 1, 2위가 선거를 다시 해야 하는데 국회를 보면 모랄데스 대통령 편이 많았으나 의회로 가면 질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개표과정이 갑자기 중단됩니다.
남미 미주 연합기구! 얘네들이 봐도 이건 너무하다 싶어 부정선거라고 공개적 비난하였습니다. 군부가 우리가 봐도 이건 아니다 사퇴해라! 하여~ 선거 무효하고 사퇴하였습니다. 현재, 그는 멕시코로 망령을 하여 열심히 트윗을 날리고 있습니다.
2020년 5월 13일날 대선을 실시해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할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수십번의 과도정부 거친 볼리비아는 2019년 10월 이후에도 계속이어지고 있습니다. 선거를 해야 어떻게든 결론이 나고 하는데 어쩔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모랄레스 대통령측근이 말하길 "부정부패가 이렇게 많았다!" 증언 하고 있으며, 한편 모랄레스 대통령은 "니들은 까봐라 안 그런줄 아냐 나는 정보도 갖고 있어!" 계속 SNS를 통해 원격정치 중입니다. 모랄레스 대통령도 처음 취임, 그리고 신헌법 개정, 2014년 당선! 명예롭게 딱 끝냈으면 볼리비아 역사상 새롭게 끌어 올린 인물이다 평가했을때 그게 안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권력자들을 보면 국가권력도 그렇고 CEO들도 만나서 물어보면 "내가 하고 싶어서 한게 아니고~ 밑에 라인들 때문에 성화 때문에 할수 없었다!" 볼리비아가 비슷비슷한 느낌이에요.
볼리비아나 페루 사진을 보면 누가 봐도 인디오가 대부분입니다. 땅딸하고 그런 느낌의 사람들!! 아르헨티나 사진 보면 100% 백인 유럽 느낌이고, 브라질가면 까무잡잡한 탄력이 넘치는 이런분들이 많습니다!
축구를 봐도 아르헨티나는 상쾌하고 대평원이런 느낌 이잖아요! 이렇게 기후가 좋아 치고 달리고 이런 속도감 있는 축구가 능숙합니다. 그러나 브라질은 기후가 끈적하고 하잖아요! 골목이나 모래사장에서 축구를 하다보니 체력적으로 바람처럼 뛰기는 쉽지 않아요. 넘치는 탄력과 개인기 그런 느낌의 축구를 했어요! 물론 다 옛날 얘기긴 하나 그런 나라별 특징이 자리잡고 있다 생각합니다.
다음 시간엔 아르헨티나!! Let's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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